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벨라루스 점령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[[http://www.khatyn.by/ru/|벨라루스에서 일어난 학살을 정리한 사이트]]. * 벨라루스의 학살을 다룬 영화로 [[컴 앤 씨]]가 있다. * 벨라루스를 비롯한 소련 서부 전역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에 관한 소련의 역사서술(historiography)은 독일군에 의한 '''소련인'''의 학살을 강조하면서 그 중에서도 특히 의도적이고 집중적인 절멸의 대상이 되었던 [[유대인]]의 희생을 고의로 무시해 버렸다. 이것은 단지 소련과 소련에 복속된 SSR들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[[사회주의]] 정권([[폴란드]], [[체코슬로바키아]], [[유고슬라비아]] 등) 전반에 만연한 현상이었다. 그 결과 동유럽 전반에서 '''슬라브인 모두 절멸의 대상이 되었다 내지는 고통을 더 많이 받았다'''는 식의 역사서술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. 그리고 동유럽 현지인의 홀로코스트 가담은 [[국제주의]]와 [[사회주의]] [[형제애]]의 강조라는 명목 하에 망각되었다.[* 예를 들어 라트비아는 소련 존속기 내내(즉 [[라트비아 SSR]] 시절)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떤 연구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.] 소련의 역사서술은 소련의 붕괴와 함께 역사서술의 장에서 퇴장하게 되었지만 역사서술에서 유대인의 희생이 망각되거나 동유럽 현지인의 홀로코스트 가담이 부정되는 현상은 동구권 및 구소련 국가들에서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그에 따른 민족주의 사관이 강화되면서 더욱 고착화되었다. 이것은 [[발트 3국]], [[벨라루스]], [[폴란드]], [[우크라이나]] 등 오늘날 동유럽권 국가들이 홀로코스트 역사서술을 놓고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이주한 [[이스라엘]] 및 [[유대인]] 공동체와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었다.[* 예를 들어 폴란드는 폴란드인이 [[부역자|홀로코스트에 가담]]한 사실을 주장할 시 처벌하는 법(이른바 홀로코스트법)을 제정했고, [[아우슈비츠]]에 폴란드인 희생자를 기리는 [[십자가]]를 세웠다.(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 사망자의 90%가 유대인이니 유대인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.)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(OUN, UPA 등)를 모욕할 경우 처벌하는 법(이른바 [[탈공산화]]법)을 제정하여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비판할 길을 막아버렸다. 벨라루스는 오늘날까지도 나치 독일에 부역한 벨라루스인의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.] [[분류:독소전쟁/전쟁범죄]][[분류:벨라루스의 역사]][[분류:독일의 학살]][[분류:독일의 전쟁범죄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